월봉서원의 역사는 고봉 선생 사후 7년만인 1578년, 호남 유생들이 지금의 신룡동인 낙암아래에 망천사라는 사당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의 산월동인 동천으로 옮겼는데, 1654년 효종이 '월봉'이란 서원명을 내리면서 사우와 동•서재, 강당을 갖추었다.
- 어등산 서쪽 산자락 박메마을 앞
그 뒤 월봉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으나, 1941년 현재의 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짓고 1978년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을 건립하여 1991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고봉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인 춘•추향 사제를 매년 3월과 9월의 초정일에 월봉서원 사당인 숭덕사에서 행하고 있고, 다양한 월봉서원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있다.
월봉서원의 주강당으로,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9호이다. '빙월'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 빙심설월(氷心雪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가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숭덕사는 문헌공 고봉 기대승을 재향하는 월봉서원 사당이다. 매 년 3월과 9월에 춘, 추향사제를 지내고 있다.
월봉서원의 기숙사이다. 명성재의 명성(明誠)은 ‘배움에 있어서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성의를 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월봉서원의 기숙사이다. 존성재의 존성(存省)은 ‘자기를 성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월봉서원 내 자료를 보관하는 부속건물이다.
고봉선생 문집 11권의 판각 474매와 충신당, 명성재, 존성재, 유영루 등의 현판이 보관되어있다.
고봉선생 문집 11권의 판각 474매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월봉서원과 고봉 기대승 선생의 연혁이나 관련 인물 등에 대한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이다.
월봉서원의 내삼문으로 사당인 숭덕사 앞쪽에 세워져있다.
고봉 기대승 선생을 모시는 사당에 들어가기 전 ‘조용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