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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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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산

어등산과 함께 광산구의 대표 산으로 꼽히는 산이 바로 용진산이다. 두 산은 판이하게 다른 모양새를 자랑하는데 어등산은 크고 완만하고 펑퍼짐한 반면 용진산을 작지만 가파르고 뾰족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동 산69

용진산은 우뚝 솟아 있어 '숫돌뫼' 그대로 한자를 취해 '聳珍山' 이라 했다.

이와 같이 봉우리가 뾰족한 산을 풍수에서 화산(火山)이라 한다. 그 해 석은 문(文)으로 풀면 붓 모양이라 필봉이고, 무(武)로 보면 창이나 칼이 된다. 땅족보에는 "시대미상의 반상화강편마암에 북동~남서방향으로 중생대 백악기 산성암맥이 끼어들어 있는 구조" 라 적혀있다.

복영마을 뒤편이나 사호마을에서 오르는 등산길에 금광을 채취하기 위해 파놓은 굴이 남아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용진산은 토봉(349m)과 석봉(339m)이 마주본 쌍봉(M자)형태이다.

특히 남서쪽에 있는 석봉이 훨씬 날카롭다. 두 봉우리 사이 고개는 배가 넘어가가는 길이라고 전한다. 행주(行舟) 형국인 임곡동에서는 닻으로 보기도 하고, 센 기를 눌러준다고 본다.

본량 장등마을에서도 '백상골' 이란 별칭이 백 명의 재상을 배출할 길지로 보는데 용진 필봉의 영향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삼도동 가삼과 도림마을도 인물을 낳은 봉우리로 여겼다.

한편 신가동 선창마을과 본량동 신흥마을에서는 부정적인 면으로 보았다. 북구 복룡마을에서는 용진의 화기가 보이면 해롭다고 믿어 불막이 숲을 조성하여 가리기도 했다.

용진산 양쪽 사면에는 가학정과 용진정사가 위치한다. 북쪽 산허리에 있는 가학정은 임란 때 벼슬도 없이 선조를 모시고 북행에 따라나선 죽산박씨 경에게 '죽림처사' 라는 아호와 지팡이를 내리고 나랏돈으로 1601년 짓게 한 정자이다.

황룡강으로 흘러드는 사호강변 길가 계단에 오르면 굴이 보이고, 벼랑길을 굽이돌아 '소금강'이 새겨진 두질 바위에 이른다. 잠시 가파른 길 따라 오르면 바윗돌이 내려다보고 있다. 층암절벽을 오르면 백년 묵은 노송을 비롯해 비자나무, 싸리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정자와 함께 백일홍 두 그루와 은행나무가 있다.

거력 서편에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고, 위에는 용진수석과 불당일월이 음각되어 있다.

화산의 기운을 잠재우려고 했고, 암자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한 듯하다.

남쪽 사면 왕동 산 3-2번지에는 한말 대학자이자 애국지사인 후석 오준선(1851-1931)이 1917년에 세운 강학소인 용진정사가 있다. 의병장이자 학자인 면암 최익현(1833~1906)을 비롯 전해산, 김태원, 오상열, 오성술이 찾아들며 항일 전략을 세우고 의논한 곳이다.

1895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광산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주변을 관망하기에 용이한데다 전라우도 특히 장성과 나주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동 산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