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27. 그 날의 떨림을 기억하며)
그 날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남북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염원을 담은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4.27 판문점 선언!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날, 벅찬 감동에 우리 모두는 환호했고, 드디어 틔어 올린 평화의 싹이 잘 자라주기를 기원했습니다.
시작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파주 임진각 철도 종단점에 멈춰 선 채 녹슬어 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르신의 허리 굽은 뒷모습은 슬픔이 묻어나는 간절함이었던 것입니다. 그해 가을, 하늘공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의 감동을 이어 나갈 무언가를 생각하던 차에 멀리 송정역 승강장에 멈춰선 기차와 어딘가로 떠날 생각에 들떠 있는 사람들이 한 장의 사진과 오버랩 되면서, ‘그래, 거기까지라도 같이 가보자’ 결심했습니다.
(광산통일열차 출발!)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여 광산구와 투게더광산나눔문화재단, 코레일이 남북통일의 디딤돌이 되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광주송정역에서 도라산역 까지 특별열차 운행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통일열차 네이밍 공모부터 뜨거웠고, 예매시작 15분 만에 300석 전석이 매진되는 등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4월 26일 이른 아침, 무궁화호 기관사는 내빈에게 광산통일열차 출발을 알렸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는 기차를 향해 승강장에 남은 사람들은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은 기념퍼포먼스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송했습니다.
(통일의 염원을 싣고, 달리는 광산통일열차!)
광산통일열차는 달리는 내내 평화통일을 이야기했습니다. 6개의 객차를 순회하며 가수 김원중 등 문화공연 팀들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노래했고, 통일사회연구소장 이신 등 3명의 강사는 ‘통일코리아의 경제력과 위상’,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시대’, ‘북녘의 삶, 있는 그대로 보기’라는 다양한 인문학 강의로 통일 공감대를 형성한 시간이었습니다.
광산통일열차 탑승 기념 홍보물 전시 및 체험 공간인 카페객차는 유명인의 그림과 남북정상회담 사진 등으로 꾸며진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았고, VIP등신대의 인기는 더할 나위 없었는데 기관사 의상 및 교복 체험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남녀노소를 불문한 인기 체험공간이 되었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다)
광산통일열차는 5시간 만에 임진강역에 도착했고, 육군 헌병의 검문 절차 후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들어선 열차는 3.8km를 더 달려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에 다다랐습니다. 400여명의 열차 승객들은 관광버스를 나눠 타고 개성공단이 한눈에 보이는 도라산 전망대로 이동했습니다.
“저기가 북한이에요? 엄청 가깝네.” 도라 전망대에 오른 어린이가 엄마 옷자락을 잡으며 물었고 “엄마도 처음 와봐서 이렇게 가까운지 몰랐어.”라고 엄마는 놀란 듯 답했습니다.
“저기가 개성이라고?”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어.” 맨 눈으로도 선명이 보이는 개성 시가지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탄성과 웅성거림은 우리나라 최북단 대성동 마을에 걸린 태극기와 북한 최남단 기정동 마을에 걸린 인공기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분단 조국을 상기하며, 수그러들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 목울대로 무언가 뜨겁게 넘어가는 듯 했습니다.
1978년에 발견되어 2002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제3땅굴은 성인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정도의 크기이나 완전무장한 군인은 1시간에 약 1만 명의 병력이, 비무장시에는 약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진촬영이 안되는 곳입니다. 도보로 약간 경사진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 제3땅굴을 관람하였습니다.
곧이어 한국전쟁 정전협정 후 미2사단 506 보병대대가 주둔하다가 1997년 미군 철수 이후 우리 정부로 반환되어 민간인을 위한 평화 안보체험시설로 탈바꿈한 캠프그리브스를 탐방했습니다. 그곳 체육관에서 열린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이사장의 ‘행복한 평화, 너무 쉬운 통일’이라는 특별강연은 통일의 필요성을 되새기는 알찬 강의였습니다.
오후 4시가 바로 지난 시각, 도라산역 광장에서는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퍼포먼스가 열렸는데 광산구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와 광산통일열차 탑승객 전원의 이름이 담긴 대형 한반도기를 선보였고, 승객들은 가로 세로 각각 5m의 한반도기에 통일과 한반도 평화·번영의 바람을 담은 열차 모양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에 참여했습니다.
도라산역에서 평양까지 205km, 오늘 광산통일열차는 아쉽게 도라산역에서 멈추고 말았지만, 우리의 열망은 205km를 달리고 달려 평양까지 닿지 않았을까, 언젠가 평양을 지나, 신의주 까지 달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오후 5시, 도라산역을 출발한 광산통일열차는 밤 10시 광주송정역에 도착했습니다.
(2019 광산통일열차 후기)
2018년 가을부터 지방정부 처음으로 '통일열차'를 구상했던 우리는 한국철도공사 광주본부·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광산구의 업무협약으로 논스톱 특별열차를 운행하여 평소에 방문하기 힘든 도라산 일원을 당일 행사로 추진할 수 있게 했고, 부서간 유기적인 협업체계 구축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한 문화공연, 인문공연 그리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최고의 협업을 펼쳐 시민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보고 말았습니다.
광산통일열차 승객은 ‘처음으로 북녘 땅을 바라보니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곳에서도 통일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런 행사를 경쟁적으로 열면 좋겠다.’고 후기를 남겼습니다.
또 다른 승객은 ‘기차 안에서 공연도 보고 도라산전망대에서 북녘 땅도 바라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됐다. 아쉬운 게 있다면 도라산역에서 더는 북쪽으로 갈 수 없었다는 것, 다음에는 광산통일열차를 타고 평양을 지나 신의주까지 달려보자.’고 바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통일열차를 타고 와서 듣는 해설사의 안보를 강조한 설명, 남북대결이 담긴 프로그램 진행이 불편했다’는 승객의 후기도 있어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높이고, 통일 준비에 대한 실천의지를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부분의 승객들이 ‘통일의 필요성과 이해 계기가 되었다’, ‘지척에 있는 북한을 느끼게 해준 다시없는 행사였다’라고 답 하는 등 광산통일열차 재운행을 희망하는 후기를 남긴 것으로 보아 몇 년 전 ‘평화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연령대가 젊을수록 통일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있다,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도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해결책은 실천적이고 체험중심의 평화통일 교육이라 결론지었습니다.
(광산구, 통일을 항해 한 발 앞서 걷다)
이제 통일은 막을 수 없는 흐름입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재개되고, 역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도 열리면서 남북관계는 다시금 화해의 국면을 맞는 것처럼 보였으나, 2019년 5월 미사일 도발이 다시 시작되었고, 대남비방이 이어지면서 다시 남북 관계가 경직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령과 제도, 이념만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설사 통일에 이른다고 해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기 때문에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통일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각과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분단사회를 오랜 기간 지내온 성인들과 달리 북한과 통일에 대한 편견이 적은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존재로 통일과 북한에 대한 잘못된 또는 편향적인 정보를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광산은 통일에 대해 올바른 지식과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과 또 시민들이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알게 되고 통일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면, 그래서 통일시대를 앞당기는 밑거름이 된다면 광산통일열차는 다시 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