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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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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사

호가정에서 시를 노래한 난세의 절신, 류사

  • 광주 광산구 동곡분토길 195

호가정 안에서 바라본 풍경

본관은 서산, 아호는 설강으로 1503년(연산군 9년) 5월 14일 봉훈랑(奉訓郞, 문관 또는 종친에게 준 종 5품 벼슬) 경흥교수(慶興敎授, 유생을 가르치는 선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27세에 벼슬길에 오른 류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의 중임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현감과 부사 등 목민관으로서 책임도 충실히 해내었다. 그러나 기묘사와와 을사사화 같은 변란으로 눌재 박상 선생, 유관, 유인숙 그리고 조광조와 같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등 피로 얼룩지는 당시 당쟁의 폐해 속에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후학을 양성하던 류사는 조정으로부터 다시 정3품 도승지에 제수가 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벼슬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는 속세에 미련을 두지 않으며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호가정에서 편안한 삶을 지냈다.

경열사 (景烈祠)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사당. 고려 말의 무신 정지(鄭地, 1347~1391)를 비롯하여 정충신, 유사, 고중영 등 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571년(선조 4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자 그의 유림들이 그 학덕과 지조를 기리는 사우인 경열사를 지어 제사 지내고 있다.

류사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혼탁한 정치 현실에 휘둘리지 않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보면 류사라는 인물의 절개와 지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비록 현실정치에서는 꽃을 피우지는 못했으나 그의 학문적 열의와 절조는 이 땅에 뿌리내려 후세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주 광산구 동곡분토길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