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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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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일

의기의대학자 박광일

  • 구 하남면 진곡리

박광일의 묘

의기(義氣)의 대학자 박광일(朴光一)은 본관은 순천. 호는 손재(遜齋)이며 1654년 9월 12일 구 하남면 진곡리에서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우헌 박상현(寓軒 朴尙玄)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벼슬이나 출세에 뜻이 없는 맑은 학자의 집안에 태어나 학문에만 전념하여 일찌기 예경(禮經 : 예법을 적은 책)에 깊이 통하였고 태극음양(太極陰陽)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다.

그나이 23세때 아버지와 친교(親交)가 있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을 유배지(流配地 : 귀향가 있는 곳)로 찾아가서 성현(聖賢 : 지식과 덕이 가장 뛰어난 사람)의 길을 배웠는데 우암은 선생을 가리켜 치수불루(置水不漏 : 물을 두 어도 새지 않는다. 즉 치밀하고 반듯하다)라고 극찬하였다. 선생의 문명(文名 : 글을 잘하여 드러난 명성)은 조정에도 알려져서 주자대전(朱子大全 : 주자학의 총판)을 바로잡는데 참여하였는데 우암선생은 주역(고대 중국의 철학서)과 고경(古經 : 옛경서를 바르게 한후 임금앞에서 신(臣)의 제자중 박광일이 특히 역학(易學 : 주역의 괘를 풀어서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학문)에 조예가 깊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송우암(宋尤庵)은 주자(朱子)를 신봉(信奉 : 믿고 반듦)하였고 선생은 우암을 후주자(後朱子 : 뒷날의 주자)라 높이고 정성으로 따랐다. 어느때 어사(御史 : 임금의 명으로 특별한 사명을 띄고 지방에 파견된 관리) 권상유(權商游)가 이곳을 지나가는 길에 선생을 찾아 세상을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을 물었다.

공정(公正 : 공평하고 올바름)이면 능사료(能事了 : 모든 것이 잘된다)라고 선생이 대답하니 권어사가 “공(公)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는 명(明)이 함께해야 하지요.” 하니 선생이 공자(公者 : 관리)가 無私 (사가없고 공정함)하면 밝음(明)이 자생(自生 : 저절로 생김) 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 얼마나 해절(該切 : 적절)한 해답인가-. 선생은 1701년에 내시교관(內侍敎官 : 내관을 가르치는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곧이어 익위사시직(翊衛司侍直 : 왕세자를 호위하는 벼슬)이 주어졌지만 끝내 사양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1705년 모친상을 치른후 지리산 문수동(智異山文殊洞)에 들어가 살면서 선생의 선성(先聲 : 전부터 널리 알려진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문인 학자들과 강론(講論 : 학술이나 도의를 이야기함)으로 날을 보내기 4년 가족들과 수토(水土 : 물과 기후)가 맞지 않아 광주로 돌아왔다. 그때 산거(山居 : 산속에서 삶)에서 지은 시 한수를 골라 그때의 선생의 심정을 살펴본다.

元來經謂不同源 淸濁何言本一原 秦地風塵雲有影 商山氷雪月無痕
潛龍自是承天意 跡丞焉能感主恩 此義於今誰與自 離騷吟罷羅寒門

우연히 읊음은 원래가 경수(涇水 : 중국에 있는 강, 濁流)와 위수(渭水 : 淸流)는 그 근원이 같지 않은데 맑음과 흐림이 어찌하여 근원이 같을 손가. 진나라 땅에 풍진(風塵 : 전쟁 북새통)이 있어도 구름은 역시 그림자가 있고 상산 땅에 얼음과 눈이 얼어 붙으니 달빛이 간곳없네. 잠룡(潛龍 : 묻혀있는 영웅)은 보시 하늘 뜻을 이어 받았는데. 못된 돼지(미련한 신하)가 어찌 임금의 은총을 느끼겠는가. 이뜻을 지금 누구와 함께 의논할 거나? 이소경(離騷經 : 초나라 屈原이 억울함을 적은 시)을 읽어가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여기서 선생의 우국충정(憂國衷情 : 나라걱정하는 마음)과 높은 기개(氣槪 : 꿋꿋한 기운)를 엿볼수 있다. 선생은 1713년에 왕자사부(王子師傅 : 왕자를 가르치는 관리)를 제수 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717년에 시강원 자의(侍講院 諮議 :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벼슬)로 불렸지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은 젊은 30대에 기사사화(己巳士禍 : 조선 19대왕 숙종이 장희빈이 낳은 아들(경종)을 세자로 삼으러 함에 송우암 등 서인(西人)이 이에 반대하자 이들을 귀양 보내고 죽인 사건)등이 일어난 난세(亂世)가 싫어 모든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을 시골에 살면서 학문과 도의(道義 :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할 도덕과 의리)를 넓히는데 힘썼다. 저서로는 생음생양설(生陰生陽說), 중정인의주정설(中正仁義主靜說) 등 12권의 문집(文集)이 있고 뒷날 호남의 유림(儒林 : 유도를 닦는 학자들)이 선생의 학덕(學德 : 학문과 덕행)과 절의(節義 : 맑은 절개)를 기려 광주 진천사(眞泉祠)와 강진 남강사(南康祠)에 제향하고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구 하남면 진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