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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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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국악계의 큰 별! 임방울

  • 광주 광산구 도산동 679

음악이 주는 감동과 위로를 요즘시대의 말로 ‘힐링’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에게는 이 음악이 절실했던 지난 세월이 있었다. 서글프고 한 많은 시대, 그리고 그 시대에는 사람들의 한을 대변하는 힐링음악과 사람이 있었다. 임방울, 그의 목소리는 시대와 사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었다. 거칠면서도 곰삭은 임방울의 소리는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듯 했고, 애간장이 끊어질 듯 구슬프고 절절한 목소리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임방울이 탄생한 시점은 바로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인 1904년이다. 그의 인생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있는 시기의 한국사에서 가장 불운했던 시기였으며 그는 고군분투하며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냈다. 격동의 시대, 소리꾼으로서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광산구의 수성마을, 가난한 농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임승근’이었는데 어려서 울지 않고 방울방울 잘 논다하여 애칭으로 붙여진 이름이 임방울이라는 예명이 되었다. 임방울이 열 살 되던 무렵, 광주 송정리에서 나주의 명창 박재실이 이끄는 창극공연이 벌어졌다. 이 공연은 임방울의 판소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임방울은 박재실 문하에서 판소리를 전수받게 된다. 판소리에 푹 빠진 임방울은 변성기로 잠시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토굴을 파고 독공을 시작했다. 피를 쏟는 노력이 뒷받침되고 나서야 마침내 득음을 하게 된 임방울은 그때부터 소리에 자신감을 얻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임방울은 타고난 우렁찬 소리와 뛰어난 노래솜씨로 그 이름을 서서히 세상에 알려나가고 있었다.

그의 나이 25세 때 큰 뜻을 품고 상경한 임방울은 매일신보사가 주최하는 조선명창연주회에 참가한다. 관객들은 명창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임방울이 무대 위로 나섰다. 무릎 위로 올라간 짧은 검정두루마기, 땅딸막한 키, 무대에 오른 초라한 행색의 임방울은 혼신을 다하여 소리를 불렀다. 그 소리가 바로 불후의 명곡 ‘쑥대머리’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임방울의 목소리는 극장 안의 수많은 청중을 사로잡고 말았다. 전라도 사투리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구수함과 애간장을 녹이는 듯 끈질기면서도 애절한 목소리에 청중들은 모두 도취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소리를 듣고 탄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화려한 데뷔를 시작으로 임방울은 여러 음반회사에 전속가수로 있으면서 쑥대머리, 호남가를 비롯한 레코드가 12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흥행은 8.15 해방의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8.15 광복과 함께 임방울은 전통적 판소리 보존의 집념이 더욱 강하게 불타올라 지방순회와 함께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임방울은 인근의 국악인들과 함께 '임방울과 그 일행'이라는 흥행단체를 조직하여 주로 시골의 장터를 중심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는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든 시원하게 노래 한 곡조를 뽑았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러나 또 다시 시대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데 바로 6.25 한국전쟁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걸어서 광주까지 내려왔다. 오는 길에 북한군을 만나 포로로 된 적도 있었는데, ‘쑥대머리’ 한자리를 부르고 풀려났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1960년 가을, 임방울은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김제 공연에 나섰다. 그는 소리를 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는 이곳 전북 김제의 장터에서 소리를 하다가 피를 흘리고 쓰러졌고 6개월 뒤인 1961년 3월 7일 밤,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5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 날 2백여 명의 여류명창들이 소복을 입고 상두꾼이 되었다.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뛰어난 소리꾼을 잃은 슬픔에 하나같이 슬퍼했다. 격동의 시대, 노래로 감동과 위로를 건넸던 그의 소리는 그 시대 사람들에겐 유일한 해방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판소리는 대중적인 음악과는 멀어져 전통이라는 과거의 자리에 머물러있지만 아직 그 시절의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상흔이 우리 역사 속에 남아있는 만큼 시대의 기억과 함께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국창 임방울을 기억하기 위해 현재 (사)임방울국악진흥회는 매년 가을 임방울국악제를 열어 재능 있는 소리꾼들을 발굴하고 있으며 광주 지하철 1호선 송정리역 역사에는 그를 기리는 임방울 전시관이 있어 그의 생애와 업적, 판소리 등을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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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 도산동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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