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산구 주민참여예산문화관광

모바일메뉴

광산구 자료저장소

인물

박노술

5/12
박노술

일본의 탄압에 분개한 항일선비, 박노술

  • 광산구 안청동 736-1

항일선비 박노술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 출생으로 노사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석음선생은 안청동에서 태어나 노사 기정진 선생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은 선비로 서기 1895년 을미사변 때 송사선생의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당시에 많은 감동과 호응을 일으켰던 선생의 격서가 존화록과 석음유고 등에 전해온다. 1905년의 강압적인 을사조약에 이어 1910년 경술년에 우리의 주권을 송두리째 빼앗은 합병조약을 강요하는 등 거듭되는 조국의 비운을 통곡하기도 하였다. 조국의 울분과 비통함을 달래기 위해 문인들 동지들과의 강론을 통하여 항일구국정신의 선양에 힘을 다했다. 일본관헌의 탄압이 시작되었지만 선생의 의지는 누구도 꺾지 못했다.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구인 되어간 박노술은 사흘 만에 의식이 끊어진 몸으로 가마에 실려서 돌아와 67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된다. 죽음 한 달 전, 그는 아들에게 "마을앞산 비룡대 위에 조선 삼천리를 뜻하는 삼층석탑을 세우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현재 광산구 안청공원에는 삼층 석대인 풍천대가 남아있다. 풍천대는 박노술 선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조국 삼천리강토가 왜적에게 짓밟혀 일조에 생지옥이 되고 말았으나 오직 나라를 구하고 주권을 되찾을 우리의 애국정신만은 저 바윗돌처럼 굳세고 단단하고 변함없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안청동 7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