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산구 주민참여예산문화관광

모바일메뉴

광산구 자료저장소

인물

기의헌(奇義獻)

5/12
기의헌(奇義獻)

기의헌(奇義獻, 1587~1653)의 자는 사직(士直), 호는 기은(棄隱), 본관은 행주(幸州)로, 고봉(高峯) 기대승 조카다. 소고룡동(광산구 신룡동 신촌마을)에서 출생했다.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 위치한 ‘담숙재’는 의병장 기의헌을 기리는 재실이다.

  • 광산구 신룡동 신촌마을(소고룡동)

기의헌(奇義獻, 1587~1653)의 자는 사직(士直), 호는 기은(棄隱), 본관은 행주(幸州)로, 고봉(高峯) 기대승 조카이다. 기의헌 아버지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인 기효분(奇孝芬)이고,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 이유회(李惟誨)의 딸로, 광주 소고룡동(광산구 신룡동 신촌마을)에서 출생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작은 아버지인 기효전(奇孝荃) 집에서 자라났으며, 종조부인 고봉 선생의 가학을 계승하여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기의헌은 자신의 서재를 ‘육오당’이라고 이름 짓고, 삼언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표현했다. 즉 육오란 “나의 밥을 지어 먹고, 나의 샘물을 길러 마시며, 나의 옷을 지어 입고, 나의 천명을 즐기며, 나의 운명을 지키고, 나의 연수를 마친다(食吾食, 飮吾泉, 衣吾衣, 樂吾天, 守吾命, 終吾年)”란 뜻이다. 권세에 아부하고 명리만을 취하는 세상을 버리고, 몸을 깨끗이 지키며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자 하는 생각이 확고했다.

기의헌의 절의 정신은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하였는데,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양향유사(糧餉有司)가 되어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미를 조달하였다. 병자호란에도 광주도유사로서 의병을 일으켜 군사를 거느리고 청주로 갔다. 그러한 사실은 광산거의록(光山擧義錄, 1761)과 호남병자창의록(湖南丙子倡義錄, 1762·1798)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신룡동 신촌마을(소고룡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