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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룡(奇挺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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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룡(奇挺龍)

기정룡(奇挺龍, 1670~1738)의 자는 현경(見卿), 호는 낙암(樂菴),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기의헌(奇義憲)의 증손자로서, 고룡면 천동리에서 태어났다. 고봉 기대승의 옛터에 낙암정을 중건했다.

  • 광산구 두정동(고령면 천동리)

기정룡(奇挺龍, 1670~1738)의 자는 현경(見卿), 호는 낙암(樂菴),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기의헌(奇義憲)의 증손자로서, 아버지는 기진성(奇震省)이다. 어머니는 순천박씨(順天朴氏) 박상현(朴尙玄)의 딸로 고룡면 천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외할아버지인 박상현(朴尙玄)에게 수학하였으며, 수기치인 하는 데 뜻을 둔 채 두문불출하고 정양하면서 담박하게 살다 갔다. 그의 맑은 수양과 굳은 절개를 보고 사람들은 ‘오늘날의 안자(顏子)’라고 칭했다.

외삼촌인 손재 박광일(朴光一, 1655~1741)은 그의 견식이 고명함을 보고 ‘고봉(高峯) 후의 1인이다’라고 칭했으며, 사람들도 ‘복재(기건)와 고봉(기대승)이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가 남긴 글 중에는 유독 향약(鄕約) 관련 글이 많은 편인데, 용동계약서(龍洞契約序), 용호향약서(龍湖鄕約序), 이건향정기(移建鄕亭記)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기정룡은 기대승을 이어 광주 고룡면의 향약을 펼쳐가는 데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고봉의 옛 터에 ‘낙암정(樂菴亭)’을 중건하고 즐거워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를 ‘낙암’이라고 칭하여서 그대로 호가 되었다. 그는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이 음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복이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두정동(고령면 천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