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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김율(金準, 金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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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김율(金準, 金聿)

김태원으로 알려진 의병장의 본명은 준(準)이다. 동생인 율(聿)과 함께 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형은 어등산에서 전투 중 순국했으며, 동생은 소지면 정동에서 체포된 뒤 형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 총살당했다.

김태원(金泰元, 1870~1908), 김율(金聿, 1882~1908) 형제는 나주사람으로 본관이 경주다. 김태원의 본명은 준(準)이고 자는 태원(泰元)이며, 호는 죽봉(竹峰)이다. 나주군 문평면 북동리 갈마지에서 태어났다. 태원의 벼슬이 참봉에 이르러 김참봉이라 불렀으며, 아우 율은 문필에 능하여 박사라는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들 형제는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김태원은 자신을 따르는 의병을 규합해 장성 기삼연 의병진을 찾아가 선봉장이 되었다. 아우 김율도 함께 했는데, 이명이 김율(金律)이다.

김태원은 고창, 법성포, 장성, 영광 등에서 활약하며 맹장으로 이름을 높였다. 독자적으로 부대를 꾸려 선봉장에 조경환, 도포장에 최종학 등을 내세워 맹렬하게 토벌대와 싸웠다. 담양 무동촌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지만 기삼연 부대가 패하고 기삼연이 광주천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자 호남창의회맹소를 정비해 호남의소로 이름을 바꾸고 반일투쟁을 벌였다. 일본군의 집요한 공세에 토벌대가 발각되고 이들에 의해 어등산에서 사살되었다. 일본군은 이에 앞서 한달 전 소지면 정동에서 체포되었던 아우 김율을 데리고 와 형의 시신을 확인시키려 했는데, 탈출을 기도하다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김태원의 기적비는 나주시민공원에 있고 묘소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지만, 동생 김율은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주 사람이지만 김태원은 어등산에서 순국해 광산구에서도 익숙한 의병장이다. 서구 농성광장에 김태원 의병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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