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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량(朴海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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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량(朴海量)

박해량은 제주에 유배된 최익현을 찾아가 배웠으며, 이때 수학한 내용을 '해상일기'로 남겼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최익현은 행장에 기록하기를 "외모의 풍채가 뛰어나고 사색의 기운이 온화하며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고 시문의 착상이 빠르며 글씨의 필법이 대단하다"며 애석하게 여겼다.

  • 광산구 장수동 410

박해량(朴海量, 1850~1886)의 자는 도겸(道謙), 호는 율수재(聿修齋), 본관은 순천이다. 아버지는 정현(鼎鉉)이며 선조 손재 박광일과 안촌 박광후를 사사했다. 노사 문인이며 제주와 흑산도에 유배된 최익현을 찾아가 배웠으나 37세로 단명했다. 제주와 흑산도에서 수학한 내용을 기록한 해상일기(海上日記)를 남겼다. 크게 세 시기로 나뉘는데 1874년 2월 10일부터 4월까지, 1875년 4월 20일부터 10월 3일까지, 1876년 2월 7일부터 6월 23일까지다. 첫 일기는 면암이 제주에 안치되자 장성에 사는 김효환과 함께 선생을 뵈러 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2차 시기는 면암이 사면되어 돌아가는 길에 집을 방문한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면암을 배행해 장성 기정진을 찾아가고 함께 선생의 집까지 동행하고 가르침을 받는 내용이 실려 있다. 마지막은 면암선생이 마항점에 행차한 것부터 시작해 흑산도로 가는 일정이 담겼다.

1875년 4월 20일 일기는 ‘선생이 사면되어 장차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내가 사는 곳을 방문했다. 선생의 종제인 정현과 족인인 도가 수행하였다’, 다음날인 4월 21일 일기는 ‘선생을 모시고 장성 하사리에 들어가 노사선생을 배알하였다. 곧이어 출발하고 진사 이최선과 송영순 선비가 수행했다. 장성부 아래 이르러 점심을 먹고 벗 김효환을 만나 함께 갔으며 사가점에 이르러 유숙했다’고 적고 있다. 마지막 일기인 1876년 6월 23일 아침에 동쪽에 청기(靑氣)가 일어남을 보고 왜란이 있을 것을 예측하며 끝을 맺는다. 면암선생문집을 보면 ‘호남의 문인 박해량이 정심사 화승을 데려와 선생의 초상을 그리게 하여 포천의 본가로 보냈다. 3개월 동안 모시다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최익현이 애석하게 여기고 행장을 찬술했는데, ‘그의 온인자애(溫仁慈愛)한 자질과 요선호고(樂善好古)하는 뜻, 그리고 과감하게 앞으로 곧장 나아가는 용맹함을 어찌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박해량이 남긴 시문을 모은 율수재유고가 있다.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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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구 장수동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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