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산구 주민참여예산문화관광

모바일메뉴

광산구 자료저장소

인물

심원표(沈遠杓)

5/12
심원표(沈遠杓)

심원표는 한말, 일제강점기 등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야 했던 인물로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광산구 동호동에서 태어났으며 기우만, 오준선 등과 교유했다. 1913년 남동마을에 만취정을 지었는데, 광주시 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 만취정 : 광산구 본량본촌길 29(동호동 419)

심원표(沈遠杓, 1853~1939)의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청송심씨 집성촌인 광산구 동호동에서 태어났다. 조선 단종 때 대제학을 지낸 심선(沈璿)의 후손이자 기묘명현 묵헌 심풍의 13세손이다. 기정진과 송병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기우만, 오준선 등과 교유했다. 조정에서 선공감역(繕工監役)의 벼슬을 내렸으나 은둔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김준, 전수용(全垂鏞), 심수택 등이 항일의병을 일으키자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일제가 명망있는 선비를 회유하기 위해 주는 은사금(恩賜金)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로 인하여 장성·광주 등지의 헌병소에 끌려가 고문과 살해 위협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 절사(節士)라고 불렀다.

1913년 남동마을에 만취정(晩翠亭)을 세웠는데, 만취정 소서에는 “옛날 정자의 이름을 만대(晩對)라 하고 거실의 이름을 남취(攬翠)라 했는데, 여기에서 ‘만’과 ‘취’를 취해 ‘만취(晩翠)’라 했다. 씨족인 심씨의 본관이 청송(靑松)이고 또 솔(松)이라는 나무가 언제나 울창하여 겨울 추위에도 그의 푸름을 잃지 않은 높은 절개를 갖고 있다. 이 정자를 남쪽에 지어 ‘만취(晩翠)’라 한 것은 소나무의 이러한 절개를 본받아 나의 만년을 보내는 서식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라고 적혀 있다. 만취정은 광주시 문화재자료 2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옆으로 남동사(南洞祠 또는 南洞影堂), 동호사가 나란히 서 있다. 남동사는 청송 심씨 인수부윤공파의 영당으로 1946년 심원표와 그 아들 남석 심종대(沈鍾大, 1882~1959), 손자 주봉 심한구(沈翰求, 1898∼1974)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만취정 : 광산구 본량본촌길 29(동호동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