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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석(吳孝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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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석(吳孝錫)

오효석의 자는 선이(善詒), 호는 생로당(生老堂) 또는 대명처사(大明處士)다. 1637년 명도동 명곡마을 영사재를 건립했다. 깊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 영사재는 한말 의병들이 주둔지로 사용했다.

  • 영사재 :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오효석(吳孝錫, 1620~1697)의 자는 선이(善詒), 호는 생로당(生老堂) 또는 대명처사(大明處士)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양평공(襄平公) 오자치(吳自治)의 6세손이고, 부친은 증 좌승지(贈左承旨) 오이구(吳以久)이다. 벼슬은 충의위(忠義衛)에 이르렀다. 광산구 본량(옛날 나주)에서 출생해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서거로 북벌계획이 좌절되고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 지방에 돌아와서는 벼슬과 인연을 끊고 은둔하며 평생을 주자학과 청군(淸軍) 타도계획을 세웠으며, 은서강학소(隱棲講學所)인 영사재(현재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를 1637년 건립했다. 제실 입구 석문에 ‘숭정일월대명별구(崇禎日月大明別區)’라고 새겨 놓는 등 외세배제의 강한 의지로 일관하다 68세로 사망하였다.

영사재가 위치한 지역은 골짜기가 길어 장탄(長灘)이라고도 하는데 인적이 드물다는 이점을 활용해 의병들이 자주 유진하며 무기를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해산 의병부대는 이곳에 주둔하며 무기를 수선하거나, 화약과 탄환을 만들었다. 의병장 오성술도 자신의 의병부대 주둔지로 활용하였다. 영사재 앞에는 오상열(吳相烈, 1887~1907) 의사의 묘소도 있다. 오효석은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오대형(吳大亨), 오대현(吳大顯), 오대춘(吳大春), 오대빈(吳大贇)이다. 송시열이 대명처사(大明處士)라는 호를 붙였으며, 저술로는 시문집 생로당유고(生老堂遺稿)이 있다. 시는 시어가 평이하면서도 시상이 고고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폐사(弊笥)는 자신의 마음을 헌 옷장에 비유하여 70평생을 헛되이 보냈다고 자탄한 것이고 잣나무, 소나무, 대나무 등의 절조를 찬양한 찬(贊)을 지었다.

기본정보
소재지
영사재 :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