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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희(林相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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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희(林相熙)

임상희(林相熙, 1858~1931)의 자는 국진(國珍), 호는 금우(錦愚),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광산구 등임동에서 태어났으며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학림정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불환정을 비롯해 용진정사, 만취정, 독수정 등에 누정시를 남겼다. 사진은 학림정사.

  • 학림정사 : 광산구 외등길 159(등임동 산 120-2)

임상희(林相熙, 1858~1931)의 자는 국진(國珍), 호는 금우(錦愚),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금호 임형수(林亨秀)의 아우 임정수(林貞秀) 후손으로, 아버지 임영욱(林永郁)과 어머니 광산인 김현수(金賢洙)의 딸 및 광주인 승진성(承進成)의 딸 사이에서 광산구 등임동에서 출생하였다.임상희는 조선시대 여느 선비들처럼 과거 합격을 일생 사업으로 삼았으며, 여러 차례 과거시험에 떨어지자 혼자 산속의 작은 정자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몸을 임천에 숨기고 후진을 가르치고 기르는 것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라며 족친의 자제들과 향당의 수재들을 가르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임상희의 학문적 연원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사귄 사람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품이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평택임씨 종인 외에도 박산에 사는 백하 양상형(梁相衡) 등 제주양씨, 도림에 사는 난와 오계수(吳繼洙)와 후석 오준선(吳駿善) 및 그 아들들, 동호의 심원표(沈遠杓) 부자, 담양 장전의 청고 이승학(李承鶴) 부자 등과 깊은 사귀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기정진(奇正鎭) 노사학파에 연원을 둔 사람들임을 볼 때 그 역시 노사의 학문과 사상에 무젖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임상희는 젊었을 때부터 산수벽(山水癖)이 있어서 산천을 두루 유람하기 좋아하였는데, 그의 문집에는 금강산을 여행하고 기록한 ‘동행록(東行錄)’과 함께 그때 지은 시가 많이 남아있다. 그뿐 아니라 광주와 인근지역의 많은 누정에 자취를 남겨서 누정이 빛나게 하였다. 그의 누정시가 남아있는 곳은 선조의 정자인 불환정(不換亭)을 비롯하여 관가정, 용진정사, 만취정, 매송당, 고반정, 완재정, 태호정, 소산정, 양암정, 청천당, 온서재, 독수정, 세한재 등이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학림정사 : 광산구 외등길 159(등임동 산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