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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창(全有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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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창(全有暢)

광산구 평동 동산마을에서 태어난 전유창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족형 전봉준 권유로 동학에 입교, 접주로 활약했다. 동생인 전유원 역시 형과 함께 농민군으로 활약하다 해금된 후 서당 훈장으로 어렵게 여생을 보냈다. 마을 앞 정자 옆에 전유창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 광산구 평동 동산마을

광산구 평동 동산마을은 천안전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에는 동학농민혁명 나주 접주 전유창(全有暢, 1859~1894) 사적비가 세워져 있는데, 전유창은 나주 관동면 동산리(현재 광산구 평동 동산마을)에서 태어났다. 자는 경선(京先), 호는 금북(錦北)이며 본관은 천안이다. 한의원을 운영하던 세묵(世黙)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부친은 지역 내 이름난 부호로 그의 집에는 수많은 과객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족형 전봉준(全琫準)의 권유로 33세이던 1891년 동학에 입교하고, 이듬해 나주 접주로 임명되어 교세확장을 위해 노력했다. 1894년 2월 보국안민을 위한 창의격문에 호응해 동생 전유원(全有元, 1863~1938)과 함께 농민군을 이끌고 손화중, 최경선 진영에 합류했다. 그러나 2차 동학농민혁명 이후 나주성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하며 화순 동복에서 싸우다 잡혀 나주로 압송하는 도중 사망했다.

동생인 전유원은 자는 경숙(京淑), 호는 북곽(北郭)이다. 형과 함께 농민군으로 활약하다 군대 해산으로 형과 작별한 뒤 함평군 장본면(오늘날 광산구 본량동), 나주 등에서 몸을 숨겼다. 해금된 이후 보광면(오늘날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에서 서당 훈장을 하다 집으로 돌아와 마을 훈장을 하며 어렵게 여생을 보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평동 동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