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철현(曺哲鉉)
- 조기정(曺基正)
- 조경환(曺京煥)
- 정득채(鄭得采)
- 전유창(全有暢)
- 임상희(林相熙)
- 이병수(李炳壽)
- 이경채(李景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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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채(鄭得采)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꽹과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된 정득채는 함평군 월야면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농악을 익힌 그는 광산농악이 재건되며 전문 농악인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1991년 광산농악 총연습 모습과 2020년 10월 문을 연 광산농악전수교육관 전경.
- 광산농악전수교육관 : 하남지실길 255-94(산정동 696-1)
정득채(鄭得采, 1939~2021)는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꽹과리 예능 보유자로 1939년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에서 부친 정봉석, 모친 홍순임 사이에서 3남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함평 월야초등학교, 광주사범병설중학교를 거쳐 광주사범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 형의 정미소 일을 도우며 살다 21세에 결혼해 아들 3형제를 두었다. 정득채가 태어나 자란 월야마을은 정월 마을굿을 쳤는데, 어릴 때부터 농악패를 따라다니며 흉내를 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웃집에 사는 정동을 상쇠에게 쇠가락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1976년 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형의 일을 돕기 위해 갔다가 농악대원이 되어 한라문화재에 출전해 설장구로 상을 받았다고 하며, 1980년 광주고속버스 운전원으로 일하며 광주고속농악대를 창설, 상쇠를 맡아 활동했다.
1986년 영광농악의 명인으로 전남 무형문화재인 우도농악 예능보유자 전경환과 김오채를 만나 이들에게 진법과 가락을 배웠다. 영광농악단 종쇠로 활동하다 광산지역 농악이 재건되며 전문 농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0년 광산농악단 설립, 1995년 광산농악보존회를 설립해 운영하며 농악 전승을 위해 노력했으며, 1990년과 1991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농악부분에 광산농악으로 참여해 2년 연속 수상했다. 제1대 광산농악 상쇠 전경석이 폐암으로 세상을 뜬 뒤 1991년 제2대 광산농악 상쇠를 맡아 활동했다. 1992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상쇠 예능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2021년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본정보
- 소재지
- 광산농악전수교육관 : 하남지실길 255-94(산정동 6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