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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동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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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동 유적지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농경복합 유적이다. 우리나라 최초 저습지 유적인 신창동은 최고(最古), 최대(最大), 최초(最初) 수식어가 붙을만한 유물들이 출토되며 관심을 끌었다.

  • 광산구 신창동 632-4

‘2천 년 전의 타임캡슐’, ‘광주의 기원’ 등의 수식어가 붙은 광주 신창동 유적지는 기원전 1세기 전후의 농경 복합유적이다. 1963년 향토사학자의 제보로 서울대학교에서 총 53기의 옹관묘를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92년 저습지에서 머리빗, 칠기굽잔 등 목칠제 유물과 토기류 등이 발굴되면서 그 학술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십여 차례가 넘는 발굴작업이 계속되며 최고(最古), 최대(最大), 최초(最初)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오래된 현악기 슬, 최대 규모의 벼껍질 압착층, 최초의 비단 등이 출토됐고, 이곳에서 직접 천을 생산했음을 알려주는 바디, 실감개 등 베틀부속구와 수레바퀴, 칠을 모아 정제하고 지니고 다니면서 덜어서 바를 수 있는 칠용기와 칠주걱 등이 발굴됐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삼한은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 사용하는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이 중국 현악기 축(筑)과 같다. 이것을 타면 소리와 곡조가 나온다”는 내용이 있다. 또 “양잠을 알고 옷감을 만들었다”는 직조기술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발굴된 유물로 기록의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벼껍질 압착층 최고 두께는 중국에서 발굴된 72cm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굴된 벼껍질 압착층은 155cm로 10톤 트럭 50대 분량의 세계 최대 규모로 당시 농업생산력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의 것까지 출토된 칠기는 숙련된 기술집단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칠기는 오늘날 첨단산업과도 같다. 유적지 옆으로 흐르는 영산강(극락강)의 옛 이름이 칠천(漆川)이었는데 칠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발화막대, 발화대 등 우리나라 최초 발화도구와 불을 붙였던 관솔을 비롯해 “삼한사람은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는 옛 기록처럼 신을 만들 때 사용했던 틀, 신발골도 나왔다. 신창동은 이렇듯 2,000년 전 영산강 변에 정착한 마한인의 대표적인 생활거점이었다. 첨단 기술과 풍요가 집약된 삶의 터전이었다. 유적은 초기철기시대 농경생활 양식, 생산, 유통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가 지속되며 발굴했던 유물의 쓰임처도 새롭게 알아내고 있다. 발굴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기본정보
지정번호
사적 제375호
소유자
국유외 사유
소재지
광산구 신창동 632-4
규모
250.086㎡
시대
초기 철기시대
지정일
1992-09-09
위치정보
버스노선

봉선27, 송암72, 송정29, 첨단192, 풍암16, 지원51, 송암72, 운림51, 수완12, 첨단94

찾아가는 방법

광주송정역에서 신창동 방면 승용차로 20분 / 광주 보건대에서 도보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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