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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문화재

범세동 선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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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동 선생묘

여말선초 시기를 살았던 범세동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묘비 이수와 문인석은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광산구 덕림동 산 94-1

광산구 덕림동에 위치한 묘지다. 범세동(范世東, 생몰년 미상)의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고려후기의 학자이자 정몽주의 제자이다. 남송 사람인 증조부가 고려로 망명하였는데 할아버지가 금성군에 책봉되며 금성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1369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덕녕부윤, 간의대부 등을 지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고향인 나주(현재 광산구 덕림동)로 돌아왔다. 세상을 떠난 후 문충의 시호를 받았고 개성의 표절사, 두문동서원, 광주 복룡사에 제향되었다.

범세동 선생묘역에는 대리석 묘비, 문인석, 상석, 양석, 동자석, 망주 등의 석물이 있다. 묘비와 문인석을 제외하고 최근에 보완된 것이다. 묘는 원형의 봉토분이고, 상석 왼쪽에 묘비가 있는데 높이는 165m이다. 비석앞면 오른쪽부터 2행으로 ‘려조충신덕령부윤범공세동 배정부인장수이씨지묘(麗朝忠臣德寧府尹范公世東 配貞夫人長水李氏之墓)’라 세로로 쓰여 있다. 사이에 22자의 글씨가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끝부분의 지묘(之墓)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판독하기 어렵다. 오른쪽 면에는 ‘오호관작성명이십이자불□완□유(嗚呼官爵姓名二十二字不□頑□有)’라는 명문이 있다.

문인석은 높이 210cm이며 각이 진 관모를 쓰고 가슴에 모은 두 손에 홀을 들고 있다. 묘비 이수부분의 연잎무늬, 문인석 등의 형태로 보아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범세동은 은거생활 중 경서를 읽으며 저술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화동인물총기(話東物叢記) 및 원천석과 함께 지었다고 하는 화해사전(華海師全)이 전해지고 있다. 범세동 선생묘는 광주시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기본정보
지정번호
지방기념물 제23호
소유자
금성범씨 시랑공파 종중
소재지
광산구 덕림동 산 94-1
시대
조선시대
지정일
1998-02-21
위치정보
버스노선

송정 197, 송정 296

찾아가는 방법

광주송정역에서 함평방면 승용차로 25분 / 삼도동 주민센터에서 도보로 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