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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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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영정

영산강 8경 중 광산구에서 볼 수 있는 제7경 풍영정은 극락강을 내려다보는 최고의 정자이다. 풍영정 자리가 있는 이곳은 덕망높은 김언거가 낙향하고 12채나 되는 정자를 지었던 곳이다.

  • 광주 광산구 풍영정길 21

영산강8경 중 광산구에서 볼 수 있는 제7경 풍영정은 극락강을 내려다보는 최고의 정자이다.풍영정 자리가 있는 이곳은 덕망높은 김언거가 낙향하고12채나 되는 정자를 지었던 곳이다.

극락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의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풍영정은 강이 줄어들고 주변에 도로가 생기면서 운치가 옛날 같지는 않지만 멀리 광주 시가지 너머로 바라보이는 무등산은 여전히 장관이다.

풍영정은1560년(명종15년)승문원 판교 김언거가 여러 벼슬을 거친 뒤 물러나 이곳에서 여러 문인 학자들과 어울리며 생활한 곳으로 이곳에서는 김인후,퇴계이황,고봉 기대승 등이 여러 문인들이 교류하던 곳이었다.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정자 안에는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쓴‘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으며 송순,이황,김인후,기대승,고경명,이덕형 등 많은 문인들의 시가 현판되어 남아 있다. ‘풍영’이라는 이름은 자연을 즐기며 시가를 읊조린다는 뜻으로 이 이름에서처럼 이곳에 모인 문인들은 서로 시를 짓고 읊으며 교류했다.풍영정에서 극락강을 바라보는 경치는 매우 아름다워 옛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 한 수 읊었음직하다.원래 풍영정은12채가 있었지만11채는 임진왜란 당시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풍영정 하나만 남아 있다.

풍영정에는 강원도 소금장수 총각과 근동마을 장씨 문중 처녀와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조선 말기에는 풍영정의 앞 극락강에는 바닷물이 밀려 작은 범선이 와 닿았는데 이때 해마다 늦은 여름철에 멀리 강원도에서 소금배를 젓고 오는 한 총각이 풍영정 가까운 마을에 사는 장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남의 눈을 피해서 만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랑의 깊이는 누구 못지 않았다. 하지만 양가집 규수와 뜨내기 소금장수와의 사랑은 환영받지 못했고 장처녀는 소금장수가 떠나있는 동안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강원도 소금장수 총각이 재회의 희망을 안고 다시 소금배를 저으며 이곳을 찾아왔지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장여인을 만날 수는 없었다. 총각은 여인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갔고 장여인은 밤마다 지금 풍영정이 있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한숨과 눈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장여인이 죽은 뒤 그녀가 서 있던 그 자리에는 한 그루 괴목이 북쪽(강원도 쪽)을 향해 자라 강물을 덮었다고 한다.

기본정보
지정번호
지방문화재 자료 제4호
소유자
광산김씨 문중
소재지
광주 광산구 풍영정길 21
규모
정면 4 칸, 측면 2 칸, 골기와 팔작지붕
시대
조선시대
지정일
1984-02-29
상세안내
풍영정에 얽힌 전설

임진왜란 당시 풍영정만 소실을 면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다른 정자들이 다 타버리고 풍영정이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의‘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올랐다. 기이하게 느낀 왜장이 즉시 불을 끄도록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날아들어 다시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현재 정각에 걸린 현판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풍(風)’자의 글씨체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전설이 생겨난 까닭이 아닌가 여겨진다.

위치정보
버스노선

문흥 18, 문흥 39, 봉선 37, 상무 62, 임곡 89, 송정 98, 첨단 09, 수완 49

찾아가는 방법

광주역에서 운남동 방면 승용차로 20분 / 광신대교에서 도보로 5분

광산 맛집 리스트
광산맛집 리스트를 나타내는 표입니다. 식당명,주소,전화번호,주메뉴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식당명 주소 전화번호 주메뉴
무진장 광주 광산구 풍영정길 29 956-5060 해물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