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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삼강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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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삼강정려

창령조씨 일가 4대의 충, 효, 열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다. 임진왜란시 의병으로 활동한 조언수의 충(忠), 그의 손자 조순악과 증손자 조후건의 효(孝), 며느리 문화유씨의 열(烈)을 기리고 있다.

  • 광산구 용진로 219(북산동 450-1)

본량동 관할 북산동 북성마을에 위치한 정려이다. 창녕조씨 일가 4대의 충효열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로 임진왜란시 의병으로 활동한 조언수의 충(忠), 손자 조순악과 증손자 조후건의 효(孝), 며느리 문화류씨의 열(烈)을 기리고 있다. 조언수는 나이 18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생인 제봉 고경명의 창의로 막하에 들어가 왜병과 싸우다가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조순악은 조언수의 손자이자 문화류씨의 아들로 가난한 살림 중에 과부가 된 모친을 정성껏 섬겨 그의 효행은 나주읍지 효자편에 실렸을 만큼 효행으로 유명했다. 모친이 병을 얻자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파악하고 한겨울에 물고기를 구해오고 선약을 구해 간호했으며, 모친이 별세한 후에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조후건은 조언수의 증손으로 어머니 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했는데, 매일 밤 호랑이가 곁에서 호위하고 날이 새면 떠나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문화류씨는 조언수의 자부로 남편 조성복의 병이 위급하자 본인의 허벅다리 살(또는 손가락)을 깎아 먹이는 등 병수발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남편이 세상을 뜨자 그 뒤를 따르려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소복을 입고 평생 수절하였다고 한다. 1897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고 1923년에 세웠다.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 골기와 맞배지붕이다. 안에 충신과 효자, 열부의 현판이 그 사적과 함께 걸려있다. 광주시 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용진로 219(북산동 450-1)
시대
1887년
위치정보
버스노선

송정 296, 임곡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