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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觀水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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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觀水亭)

송산동 내동마을 입구 남산 언덕에 위치한 정자다. 오응석(吳應錫, 1660~1735)이 지방유림과 교유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곳이다.

  • 내동송동길 37(송산동 864-1)

광산구 송산동 내동마을 입구 남산 언덕에 위치한 정자다. 오응석(吳應錫, 1660~1735)이 지방유림과 교유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중앙에 방을 두고 있다. 오응석의 자는 운경(運卿)이고, 호는 광산재(廣山齋)다. 부친 오이해(吳以海)와 나주나씨 나인해(羅仁海)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광산사의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다. 자료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1690년 혹은 1726년 창건한 것으로 나타난다. 오응석은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힘썼는데, 선조인 오겸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살았던 마을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초정을 짓고 관수정이라 편액을 달았다.

오응석이 지은 관수정 원운시는 ‘십년 경영하여 집 몇 칸을 짓고 이곳에 올라 눈길을 긴 냇물 따라가네. 맑은 물은 멀리 동남항으로 달려가고 푸른 빛은 위아래 하늘을 함께 이었네. 비 온 뒤에 뭇 별은 손님맞아 별빛 쏟아내고 밤이 되어 밝은 달은 인간세상 가까이서 둥그네. 여울을 보는 방법은 건드리지 않은 것, 오래도록 앉아 한가로이 욕심없는 신선이 되었네’라는 내용이다. 맹자의 ‘물을 관찰하는데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관찰해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는 말을 빌려 쓰고 있다. 김문옥이 남긴 관수정기, 오헌수 관수정 후기, 오방선 관수정 중건기 등이 있다.

1949년 오헌수가 쓴 관수정 후기는 “이 정자의 이름을 ‘관수’라 하였다. 이 이름은 참으로 도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지을 수 없는 아주 뜻깊은 명칭이다. 물을 보는데 있어서도 하나의 방법이 있다는 맹자의 관수유술(觀水有術)이나 물의 흐름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공자의 기칭어수(亟稱於水)와 동일한 뜻으로 도의 본체에 근본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고 적었다. 관수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관수정 유허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의 관수정은 본래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정보
소재지
내동송동길 37(송산동 8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