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부 광산김씨정려
- 평택임씨삼강유허비
- 효자 정계흥지려
-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
- 의령남씨·광산김씨 정려각
- 옥동 3층 석탑
- 선암사지 3층 석탑
- 충현각(忠賢閣)
- 지어재(志於齋)
- 율수재(聿修齋)
- 오성재(五星齋)
- 귀후재(歸厚齋)
- 경장각(敬章閣)
- 경모재(敬慕齋)
- 경모재(敬慕齋)
- 진천사(眞泉祠)
- 신호사(莘湖祠)
- 등임사(登臨祠)
- 대산사(大山祠)
- 후암정(後岩亭) 터
- 후주정(後洲亭) 터
- 호은정(湖隱亭)
- 낙암정(樂庵亭)
- 송음정(松陰亭)
- 외성당(畏省堂)
- 관수정(觀水亭)
- 유애서원(遺愛書院)
- 용아시비
- 석재연자방아
- 죽산박씨 대종가
- 오상열 의병장 묘역
- 후석 오준선 묘역
- 고봉 묘역
- 오상열 의병장 순절기적비
- 박현동 의병 표성비
- 어등산 한말호남의병 전적지
- 국창임방울 노래비
- 민목사불망비
- 용마바위
- 이기손 의병장 의적비
- 김해김씨 효열비
- 시기재(始基齋)
- 두남재(斗南齋)
- 봉강재(鳳崗齋)
- 오남재(吾南齋)
- 영사재(永思齋)
- 곡부공씨열행비
- 영광김씨효열정려
- 밀양손씨삼효려
- 광산김씨효열각
- 선거이지려(宣居怡之閭)
- 남동사(南洞祠)
- 원당영각
- 송호영당
- 불환정(不換亭)
- 칠송정(七松亭)
- 가학정(駕鶴亭)
- 도림사(道林祠)
- 동호사(東湖祠)
- 대동사(大東祠)
- 대명사(大明祠)
- 화암사(花巖祠)
- 광산사(廣山祠)
- 학림정사(鶴林精舍)
- 송산동 미륵불
- 양림사 부도
- 동촌마을 입석
- 세동마을 입석
후주정(後洲亭) 터
후주정(後洲亭) 터
옥동 옥연에 있는 정자로 이진영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했으며 1921년 이전 중건되었으나, 2022~2023년 사이 허물어지고 원룸이 들어섰다.
- 광산구 평동로 735번길 16-4(옥동 624-6)
평동 관할 옥동 옥연에 있는 정자인데 전통 한옥의 가옥구조로 개조했다. 본래 후주 이진영(李振永, 1876~1956)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11년 건립했으나 그의 제자와 유림들이 1921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중건하고 1956년 후주 사후 그를 배향하는 사우로 사용하기 위해 고쳤던 것이라고 한다.
정자가 있는 곳은 서당골이라 불렸던 옥동마을 중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목구조와 조적구조가 혼합된 양식이었다. 중앙에 장마루를 깐 마루방을 배치하고 좌우 협칸에 온돌방을 두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후주정은 광산 출신 이진영의 사우(祠宇)이자 정사(精舍) 기능의 정자건축으로, 이건 후 개보수가 이루어진 과정에서 살림집 형식으로 건축적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한옥과 근대양옥의 기법이 혼합된 한양절충적 개량한옥 양식은 정자건축의 변용적 사례로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허물어지고 원룸 건물이 들어섰다.
이진영은 이종수의 아들로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여 효행과 성경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수많은 문인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1934년 조선 삼황묘 시정자로 천거되었고 서울 성문학원 장의로 망촉되었다. 후주정 내부에는 후주의 선친 이종수의 효행을 찬양하자는 취지의 나주향교, 광주향교, 태인 무성서원 유림들의 통문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고 한다.
기본정보
- 소재지
- 광산구 평동로 735번길 16-4(옥동 6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