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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임사(登臨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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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임사(登臨祠)

등임동에 있는 사우로 임형수, 임식, 임회를 제향하고 있다. 1957년 건립되었으며 평택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광산구 박호등임로 내등마을

임곡동 관할 등임동에 있는 사우로 임형수(林亨秀, 1504~1547), 임식(林植, 1539~1589), 임회(林檜, 1562~1624)를 제향하고 있다. 1957년 건립되었으며 평택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임형수는 북병사(北兵使) 임준(林畯)의 아들로 자는 사수(士遂)이다. 1531년 18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1535년 대과에 급제하여 사관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 뒤 주서, 기사관 등을 지낸 후 인종이 동궁으로 있을 때 시강원설서로 뽑혔다가 다시 홍문관수찬을 지낸 후 호당(湖堂)에서 퇴계 이황 등과 같이 학문을 닦았다. 병조좌랑, 회령판관, 이조좌랑, 홍문관교리, 이조정랑, 사간원사간, 홍문관응교, 전한 등을 두루 지냈다. 1547년 정미사화(丁未士禍)로 귀양 갔다가 사약을 받았다. 사약을 마셨어도 죽지 않자 스스로 목을 찔러 숨을 거뒀다고 한다.

임식의 자는 숙무(叔茂)로, 임형수의 종자(從子)이다. 1564년 사마시에 합격, 1572년 문과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하였다가 공조, 병조좌랑,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임회의 자는 공직(公直)으로 임형수 조카이자 송강 정철의 사위다. 1582년 진사시 합격, 1611년 문과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지냈다. 1613년 이이첨 등의 무고로 양산에 유배, 1623년 인조반정 후 예조정랑 군기시첨정을 거쳐 나주목사 재임 중 남한산성 수축,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싸움에 임하다가 순절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맞배지붕이고 경내에는 등임사묘정비(登臨祠廟庭碑)가 있다. 1959년 건립한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골기와 건물인 강당 저존재(著存齋)가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박호등임로 내등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