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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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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

송산동 송동마을에 위치한 서산류씨 정려다. 서산류씨효행려(瑞山柳氏孝行閭), 서산류씨정려(瑞山柳氏旌閭)로 알려졌으나, 현재 정려 앞에는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광산구 송산동 산 4-1

송산동 송동마을에 위치한 서산류씨 정려다. 기존 문헌에는 서산류씨효행려(瑞山柳氏孝行閭), 서산류씨정려(瑞山柳氏旌閭)로 알려졌으나, 현재 정려 앞에는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이라는 비석으로 정려각을 설명하고 있다. 이 정려문은 류영(柳瑛), 류현(柳玹) 형제와 그들의 처 고흥유씨, 낙안오씨, 여동생인 정성일(鄭聖一) 처 서산류씨 효행을 기리고 있다. 정유재란(광산구사에는 임진왜란으로 기록됨) 당시 류영, 류현 형제는 어머니 나주오씨를 모시고 피난 중 왜적에게 포위당하자 모친을 지키려다 함께 살해됐다. 이 상황을 숨어서 지켜보던 그들의 부인과 여동생이 뛰쳐나와 왜적에 대항하다 이들 역시 죽음을 당했다. 전란 후 1599년 나주목사 조수준의 주청으로 1615년 정려가 내려졌고, 1624년 지금의 위치에 정문이 세워졌다. 그러나 1920년 일제강점기에 일본헌병이 정려 내 현판을 떼어버렸다고 한다.

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가운데에 정려된 5위(旌閭五位) 이름을 새긴 비석 1기가 세워져 있고, 5명의 정려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에는 ‘효자 성균진사 류영지려(孝子成均進士柳瑛之閭)’, ‘효열부 성균진사 류영지처 고흥류씨지려(孝烈婦成均進士柳瑛之妻高興柳氏之閭)’, ‘효자 통덕랑 류현지려(孝子通德郞柳玹之閭)’, ‘효열부 통덕랑 류현지처 낙안오씨지려(孝烈婦通德郞柳玹之妻樂安吳氏之閭)’, ‘효녀 통덕랑 정성일지처 서산류씨지려(孝女通德郞 聖一之妻瑞山柳氏之閭)’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송산동 산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