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부 광산김씨정려
- 평택임씨삼강유허비
- 효자 정계흥지려
-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
- 의령남씨·광산김씨 정려각
- 옥동 3층 석탑
- 선암사지 3층 석탑
- 충현각(忠賢閣)
- 지어재(志於齋)
- 율수재(聿修齋)
- 오성재(五星齋)
- 귀후재(歸厚齋)
- 경장각(敬章閣)
- 경모재(敬慕齋)
- 경모재(敬慕齋)
- 진천사(眞泉祠)
- 신호사(莘湖祠)
- 등임사(登臨祠)
- 대산사(大山祠)
- 후암정(後岩亭) 터
- 후주정(後洲亭) 터
- 호은정(湖隱亭)
- 낙암정(樂庵亭)
- 송음정(松陰亭)
- 외성당(畏省堂)
- 관수정(觀水亭)
- 유애서원(遺愛書院)
- 용아시비
- 석재연자방아
- 죽산박씨 대종가
- 오상열 의병장 묘역
- 후석 오준선 묘역
- 고봉 묘역
- 오상열 의병장 순절기적비
- 박현동 의병 표성비
- 어등산 한말호남의병 전적지
- 국창임방울 노래비
- 민목사불망비
- 용마바위
- 이기손 의병장 의적비
- 김해김씨 효열비
- 시기재(始基齋)
- 두남재(斗南齋)
- 봉강재(鳳崗齋)
- 오남재(吾南齋)
- 영사재(永思齋)
- 곡부공씨열행비
- 영광김씨효열정려
- 밀양손씨삼효려
- 광산김씨효열각
- 선거이지려(宣居怡之閭)
- 남동사(南洞祠)
- 원당영각
- 송호영당
- 불환정(不換亭)
- 칠송정(七松亭)
- 가학정(駕鶴亭)
- 도림사(道林祠)
- 동호사(東湖祠)
- 대동사(大東祠)
- 대명사(大明祠)
- 화암사(花巖祠)
- 광산사(廣山祠)
- 학림정사(鶴林精舍)
- 송산동 미륵불
- 양림사 부도
- 동촌마을 입석
- 세동마을 입석
대명사(大明祠)
1963년 지역 유림들이 생로당 오효석(吳孝錫, 1620~1697)과 우암 송시열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오자치 후손인 오효석은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영사재를 건립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본량동 관할 명도동 명곡마을을 지나 농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 골짜기 끝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사우다. 1963년 지역 유림들이 생로당 오효석(吳孝錫, 1620~1697)과 우암 송시열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오효석의 자는 선이(善詒), 호는 생로당(生老堂) 또는 대명처사(大明處士)다. 오자치의 6세손으로 부친은 오이구(吳以久)다. 병자호란,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로당은 효종의 서거로 북벌계획이 좌절되고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대명동에 은둔하며 후진양성에 진력했다.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등과 회동하며 영사재를 건립해 주자학과 배청사상을 가르쳤다. 제실 입구에 ‘숭정일월 대명별구(崇禎日月 大明別區)’이라고 새겨 외세배제 의지를 드러냈다. 대명처사라는 호는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것이다.
대명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평삼문의 대문과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문 상부에는 홍살을 달고 대문 중앙에 태극문양을 그렸다. 대명사 아래 오른쪽에는 영사재가 있는데, 오효석의 은서강학소이자 전해산 부대, 오성술 부대 등 한말의병의 무기 제작소이자 주둔지로 활용되었다. 1636~1637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707년 오시탁이 중수했다. 정면 4칸, 측면 1칸, 팔작지붕으로 송시열이 쓴 현판과 오효석이 쓴 ‘생로당’ 현판이 걸려 있다.
기본정보
- 소유자
- 나주오씨문중
- 소재지
-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 시대
-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