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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사(大明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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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사(大明祠)

1963년 지역 유림들이 생로당 오효석(吳孝錫, 1620~1697)과 우암 송시열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오자치 후손인 오효석은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영사재를 건립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본량동 관할 명도동 명곡마을을 지나 농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 골짜기 끝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사우다. 1963년 지역 유림들이 생로당 오효석(吳孝錫, 1620~1697)과 우암 송시열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오효석의 자는 선이(善詒), 호는 생로당(生老堂) 또는 대명처사(大明處士)다. 오자치의 6세손으로 부친은 오이구(吳以久)다. 병자호란,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로당은 효종의 서거로 북벌계획이 좌절되고 명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대명동에 은둔하며 후진양성에 진력했다.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등과 회동하며 영사재를 건립해 주자학과 배청사상을 가르쳤다. 제실 입구에 ‘숭정일월 대명별구(崇禎日月 大明別區)’이라고 새겨 외세배제 의지를 드러냈다. 대명처사라는 호는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것이다.

대명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평삼문의 대문과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대문 상부에는 홍살을 달고 대문 중앙에 태극문양을 그렸다. 대명사 아래 오른쪽에는 영사재가 있는데, 오효석의 은서강학소이자 전해산 부대, 오성술 부대 등 한말의병의 무기 제작소이자 주둔지로 활용되었다. 1636~1637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707년 오시탁이 중수했다. 정면 4칸, 측면 1칸, 팔작지붕으로 송시열이 쓴 현판과 오효석이 쓴 ‘생로당’ 현판이 걸려 있다.

기본정보
소유자
나주오씨문중
소재지
광산구 명곡길 170-30(명도동 507)
시대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