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산구 주민참여예산문화관광

모바일메뉴

광산구 자료저장소

비지정문화재

도림사(道林祠)

5/12
도림사(道林祠)

도림사는 1934년 유림들의 발의로 노사 기정진과 도림마을 출신의 난와 오계수, 후석 오준선의 학덕과 유풍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사당이다.

  • 광산구 도림하길 33(도덕동 413)

삼도동 관할 도덕동 도림마을에 있는 사우다. 1934년 노사 기정진(奇正鎭, 1798~1879), 난와 오계수(吳繼洙, 1843~1915), 후석 오준선(吳駿善, 1851~1931)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세웠다. 기정진은 위정척사파의 정신적 지주로 순창에서 태어났으나 양친이 세상을 떠난 후 부친의 고향인 장성군 하남(황룡면 아곡리)로 이주해 문인을 양성했다. 손자 기우만은 가학을 이어받아 전남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오계수와 오준선은 나주오씨이자 기정진 문인으로 이 마을 출신이다. 오계수의 자는 중함(重涵), 호는 난와(難窩)다. 오갑선(吳甲善)의 아들로, 어려서는 생조부인 임리재(臨履齋) 오태규(吳泰圭)에게 수학하였고, 장년이 되어서는 오준선(吳駿善)과 함께 기정진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주로 집안 재실인 지어재(志於齋)나 대명동 영사재(永思齋), 석문동 석문정사(石門精舍)에서 강학하였는데, 1895년 봄에는 원당(元堂)마을에 2칸짜리 서벽암(棲碧庵)을 짓고 머물렀다. 그는 수많은 누정에 시문을 남겨서 누정문학을 풍부하게 만들었는데, 기우만, 오준선, 고광선 등과 함께 호남 대표 누정작가라고 할 수 있다.

오준선의 자는 덕행(德行), 호는 후석(後石)이다. 오하규의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오항규(吳恒圭, 1824-1874)에게 입양되었다. 어려서 오태규에게 수학했으며 기정진의 문인으로 기우만, 고광순 등과 교류했다. 경술국치 후 석문산에 은거했으며 용진산에 정사가 건립되자 그곳으로 옮겨갔다. 도림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자그마한 건물이다. 사우 앞에는 재실인 지어재(志於齋)가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본정보
소재지
광산구 도림하길 33(도덕동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