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부 광산김씨정려
- 평택임씨삼강유허비
- 효자 정계흥지려
- 오효열정문(五孝烈旌門)
- 의령남씨·광산김씨 정려각
- 옥동 3층 석탑
- 선암사지 3층 석탑
- 충현각(忠賢閣)
- 지어재(志於齋)
- 율수재(聿修齋)
- 오성재(五星齋)
- 귀후재(歸厚齋)
- 경장각(敬章閣)
- 경모재(敬慕齋)
- 경모재(敬慕齋)
- 진천사(眞泉祠)
- 신호사(莘湖祠)
- 등임사(登臨祠)
- 대산사(大山祠)
- 후암정(後岩亭) 터
- 후주정(後洲亭) 터
- 호은정(湖隱亭)
- 낙암정(樂庵亭)
- 송음정(松陰亭)
- 외성당(畏省堂)
- 관수정(觀水亭)
- 유애서원(遺愛書院)
- 용아시비
- 석재연자방아
- 죽산박씨 대종가
- 오상열 의병장 묘역
- 후석 오준선 묘역
- 고봉 묘역
- 오상열 의병장 순절기적비
- 박현동 의병 표성비
- 어등산 한말호남의병 전적지
- 국창임방울 노래비
- 민목사불망비
- 용마바위
- 이기손 의병장 의적비
- 김해김씨 효열비
- 시기재(始基齋)
- 두남재(斗南齋)
- 봉강재(鳳崗齋)
- 오남재(吾南齋)
- 영사재(永思齋)
- 곡부공씨열행비
- 영광김씨효열정려
- 밀양손씨삼효려
- 광산김씨효열각
- 선거이지려(宣居怡之閭)
- 남동사(南洞祠)
- 원당영각
- 송호영당
- 불환정(不換亭)
- 칠송정(七松亭)
- 가학정(駕鶴亭)
- 도림사(道林祠)
- 동호사(東湖祠)
- 대동사(大東祠)
- 대명사(大明祠)
- 화암사(花巖祠)
- 광산사(廣山祠)
- 학림정사(鶴林精舍)
- 송산동 미륵불
- 양림사 부도
- 동촌마을 입석
- 세동마을 입석
불환정(不換亭)
임곡동 관할 등임동 내등마을 어등산 깊숙한 곳에 있는 정자로 임덕원(林德遠, 1713~1787)이 지었다. ‘삼공불환비강산(三公不換比江山)’이라는 고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아름다운 강산을 삼공(고려시대 태위, 사도, 사공의 세 벼슬을 이르는 말로 삼정승과 같은 의미)과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모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중수했으며, 1903년 기와로 바꾸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방 주위 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우만의 기(記)가 있다. 상량문에 ‘숭정기원후삼신묘(崇禎紀元後三辛卯)’라는 기록이 있어 1771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덕원은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임형수와 이괄의 일당에게 살해된 임회의 후손이다. 학문과 자연에 몰두하며 자신이 지은 모정에 은거하자 사람들이 용이 엎드려 있다는 뜻으로 복룡암(伏龍菴)이라 하였다. 불환정 앞에 세워진 표시석은 1771년 도리석초, 도리기둥, 정측면 모두 3칸, 팔작지붕, 중앙에 방을 꾸며 이곳으로 옮겨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본래 다른 곳에 모정으로 지었던 정자를 1771년 이곳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지은 시에는 ‘3칸의 정사를 짓고 의연하게 속된 거처를 멀리했네. 성근 울타리 사이에 버드나무와 국화를 심었고 처사에게는 반듯한 거문고와 책 뿐이라. 입을 오므린 채 남새밭 풀을 매고 눈살을 찌푸려가며 약초를 캐었네. 한가롭게 노닐며 속세 생각 끊어지니 참다운 벗도 허망함을 분명하게 알겠더라(精舍三間築 依然絶俗居 疎籬仍柳菊 淸案但琴書 蹙口鋤蔬後 攢眉採藥餘 優閒方自適 眼中知其虛)’라며 정자를 짓고 소요하는 마음을 담았다.
기본정보
- 소유자
- 평택임씨문중
- 소재지
- 광산구 내등길 265(등임동 204)
- 시대
- 17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