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

소촌로 46 번 길. 키 작은 주택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정적이 골목 안에 가득 메웠고 벽화로 장식된 골목 끝자락에는 시인 박용철이 살았던 옛집 용아생가가 있었다. 초가이엉이 얹힌 아담하고 단아한 얼굴의 용아생가는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현대식 건축물과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 , 두 시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문이 잠겨 있잖아 ?!'

열리지 않는 대문을 흔들며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후회할 뻔 했지만 출입구는 좌측으로 돌아가니 따로 있었다.

끼이이이 -. 드라마 사극에서나 들어봄직한 문 여는 소리가 친근하면서도 무척 낯설었다. 생가에 들어가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마당과 널찍한 초가집이 나왔다.

시골집에 놀러온 듯한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인위적인 느낌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 용아생가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안채에는 박용철 시인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안은 여느 집처럼 생기가 느껴졌다. 안채로 가는 길엔 용아의 대표작인 ‘ 떠나가는 배 ’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시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일제강점기 시절 한 청년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식과 정신적 갈등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 했다.

안채 뒤편에는 기와가 얹힌 사당이 자리하고 있고 , 용아생가는 본채부터 사당까지 집안 전체가 아담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 날씨 탓일까 ?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에서는 파릇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이렇듯 용아생가는 ‘ 기분이 좋은 집 ’ 이었다.

용아생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앞서 언급했던 초가이엉이다.

옛날에 초가인 이 집을 용아의 아버지가 지붕에 기와를 얹혀 개량하려고 하자 이에 용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골집은 초가라야 어울립니다. 가을에 이엉을 올려놓은 후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노랗게 빛나는 그 색깔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에 용아의 아버지는 기와집으로 개량할 생각을 접었다고 한다. 용아가 생전에 초가지붕을 얼마나 좋아했을지 알게 해주는 일화다. 비록 지금 이 집에서 용아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용아 박용철이 시를 꿈꾸었던 집 용아생가는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며 우리와 함께 시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