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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삼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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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삼강문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은 충민공 양산숙 일가 7명을 기리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세운 정려문(旌閭門)이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양씨삼강문은 정면 5칸·측면 1칸짜리 맞배지붕의 평범한 건물이다.

  • 광주 광산구 박호동 산 131-5
  • 062-954-4315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양씨삼강문은 충민공 양산숙 일가 7명을 기리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세운 정려문(旌閭門)이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그 동네에 세워주는 문을 뜻한다. 양씨삼강문은 정면 5칸·측면 1칸짜리 맞배지붕의 평범한 건물이다.

원래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2명씩을 모셨으나, 회진임씨 문중으로 출가한 양산룡의 딸은 임씨 문중에서 모시고 있어 현재는 6분의 정려만을 모시고 있다.양산숙은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진을 친 다음 고경명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의주행재소로 가서 선조에게 의병의 활동과 적의 동태를 보고 하였다. 이에 선조는 즉석에서 그를 공조좌랑에 임명하고 교지를 내려 군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듬해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양산룡도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에 가담하여 진이 강화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 지방에서 재물과 곡식을 모아 만여명의 군량을 조달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난시키기 위하여 나주 삼향포에서 뱃길로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들이 나타나자 그와 어머니 박씨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바닷물에 몸을 던져 지조와 정조를 지켰다. 정려는 인조 13년 생원 홍탁의 상소로 세워지게 되었다.

기본정보
지정번호
지방기념물 제11호
소유자
제주양씨 문중
소재지
광주 광산구 박호동 산 131-5
규모
정면 5칸, 측면 1칸, 맛배지붕
시대
조선시대
지정일
1985-02-25
연락처
062-954-4315
상세안내
설명안내

  • 절부 : 양응정의 처 죽산박씨, 양산구의 처 지산이씨는 왜군을 만나 바다에 투신하여 순절
  • 효자 : 양산룡, 양산축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순절
  • 충신 : 양산숙은 임진왜란때 진주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투강 순절
  • 열녀 : 양응정의 딸 김광운의 처는 정유재란때 삼향포에서 절사

관련정보

인물편 ‘송천 양응정’, 문화재편 ‘양송천 묘역’

위치정보
버스노선

봉선27, 송암72, 송정29, 첨단192, 풍암16, 지원51, 송암72, 운림51, 수완12, 첨단94

찾아가는 방법

광주송정역에서 신창동 방면 승용차로 20분 / 광주 보건대에서 도보로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