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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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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룡산

황룡강을 사이에 두고 어등산과 마주보는 복룡산은 해발 228m로 어등산보다 훨씬 낮다. 복룡산은 광산구 평동과 어룡동을 가르며 평동쪽에서 보면 평범한 뒷동산이지만 어룡동에서 보면 황룡강과 함께 제법 우람한 자태가 꼭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산이다.

  • 광주 광산구 용곡동 산 44-1

황룡강을 사이에 두고 어등산과 마주보는 복룡산은 해발 228m로 어등산보다 훨씬 낮다. 복룡산은 광산구 평동과 어룡동을 가르며 평동쪽에서 보면 평범한 뒷동산이지만 어룡동에서 보면 황룡강과 함께 제법 우람한 자태가 꼭 무언가 있을 것 같은 산이다. 평동의 용동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올라가다 보면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룡산 자락에 접어든다. 잘 정비된 등산로와 악수터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소나무 밭을 따라 난 등산로를 올라 산의 중턱에 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평동의 들녘이 한눈에 보인다. 복룡산에는 여러 개의 봉화대가 있었다. 지금은 풀로 뒤덮여 세월의 무성함만 느끼게 하지만 산 정상에는 아직 봉화대 터가 남아 있다.

복룡산에 깃든 옛이야기

복룡산에서 전해지는 설화는 어쩐지 한편의 영화 스토리 같다. 900년대인 후삼국시대, 복룡산 일대는 견훤과 왕건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던 격전지였다. 영산강 하류 쪽에서는 왕건 세력이 밀고 올라오고 내륙 쪽의 견훤 세력은 복룡산을 보루 삼아 밀어냈다. 그리고 이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복룡산의 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패한 후백제 견훤의 휘하에 원상이라는 한 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에게는 아사라는 애첩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우수에 찬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사는 돌덩이처럼 차갑게 그저 장군의 요청에 굴종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사에게는 사랑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원상장군에게 대적하는 지방민병의 수괴로 활약하다가 죽었다고 했다. 그 사내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 그 여인에게 끼워준 옥가락지가 있었는데 원상장군이 생각하기에는 이 반지에 아사가 사랑했던 남자의 원혼이 붙어 아사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왕건의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후백제의 국운이 기울어 가던 어느 날, 애첩 아사가 장군에게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간청을 하였다. 아사는 겨울이 되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며 원상장군을 설득했고, 원상 장군은 간절하게 부탁하는 그녀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가락지를 두고 가면 돌아올 때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황룡강 물가에 얇은 얼음이 깔리기 시작한 초 겨울날, 아사녀가 돌아왔다. "고향에 무슨 변고는 없었는가"하고 장군이 정겹게 묻자 그녀는 "저에게는 전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내아이가 하나 있는데 제가 떠나올 때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 아이는 중병을 앓고 있는데 지금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죽으면 까마귀가 되겠다 하더군요.” 아사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아사는 약속대로 가락지를 되돌려 받으려고 했지만 장군은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얼마 뒤, 후백제의 견훤군은 왕건군에게 패하였고 복룡산 앞 황량한 들판에는 시체들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그 가운데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원상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리더니 새까만 그림자가 원상장군의 주위를 뒤덮었고 고목 위에 앉아 노려보고 있던 까마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장군의 한눈을 쪼아 버렸다. 그리고 또 남은 한 눈도 무언가에 의해 뽑히고 말았다. 그리고 장군의 귀에 피맺힌 아사의 절규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저에게서 빼앗은 건 당신이에요“

기본정보
소재지
광주 광산구 용곡동 산 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