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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유래

임곡동

임곡동
  • 광주 광산구 임곡동 451-2
원정마을

▶ 촌명의유래 : 원명은 곰실이었으나 조선시대 고을원님이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본 마을 경관이 아름다워 원님의 元자와 정자나무의 亭자를 따서 원정(元亭)이라 한다.
▶마을의 형성과 변천 : 광산김씨 김광엽이 담양에서 살다가 병자호란 때 피난 차 이곳에 와 개촌하였다.

외등마을

▶ 촌명의유래 : 등임동의 바깥쪽에 있다 하여 외등이라 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400여 년 전 만죽 임득지가 사화와 난을 피해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내등마을

▶ 촌명의유래 : 속칭 「강당」「모랏터」「아랫몰」이라고하며 등임사의 제일 안쪽에 있다하여 내등이라 칭한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마을의 생성과정은 외등과 같다

방혜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형국이 물위에뜬 주형(舟形)이라 혀여 일제강점기에는 '배외재'라고도 했으며 이후 마을을 어등산 준봉이 감싸고 있어 경관이 빼어난다하여 '방혜'라 이름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약 450년전 성평이씨 이종우가 나주 다시면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한 후 정착개촌하였다.

본촌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뒤에 솟아 있는 가망매는 마을 명칭의 유래와 연관이 있다. 그 모습이 '날으는 까마귀' 같다 하여 오산(烏山)이라 하다가 일제강점기에 본촌(本村)으로 고쳤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750년경 평산신씨 신훈욱이 개촌하였으며 그 뒤 양씨, 임씨 등이 들어와 지금의 마을을 형성하였다.

신등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명칭 유래는 뒷산에 절이 있어 '절앞'이라 불리다가 행정구역 개편 때 신등(새등)으로 고쳤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지금부터 약 60여년전 수원최씨 최병문이 원산막에서 옮겨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원산막마을

▶ 촌명의유래 : 1430년 쯤에 현풍곽씨 곽해초가 고려가 망하자 이곳 산속에 막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산막(山幕)'이라 했다가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 해서 원산막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서기 1430년에 좌우보승중랑의 벼슬을 지낸 곽해초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임금을 섬길수 없다하여 고향인 경남 현풍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산속에 막을 짓고 살다가 정착하여 마을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신봉정마을

▶ 촌명의유래 : 청송심씨가 들어와 살면서 심봉정(心奉亭)이라 하였으나 그후 신봉정(新奉亭)으로 개칭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723년 경에 청송심씨 심성지가 이웃마을인 원정에서 옮겨와 정착개촌하였다.

보화촌마을

▶ 촌명의유래 : 조선 후기 1780년경까지 외지인들이 모여 산다 하여 '외촌(外村)'이라 부르다가 그 뒤 1930년경 순천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보화촌이라 개칭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775년경 여양진씨가 본량 산수리에서 옮겨와 마을의 터를 잡았다. 그 뒤 광산김씨, 전주이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뤘다.

연동마을

▶ 촌명의유래 : 조선 중기 방씨가 처음 들어와 개촌하였을때는 「도래」라 하였으나, 태인박씨와 고성이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앞에 연방죽이 있다하여 '연동(蓮洞)'이라 불러 지금에 이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조선 중기 방씨가 개촌하였으나 지금은 떠나고 없으며, 그 뒤 1650년에 고성이씨 이후발이 고향인 함평을 떠나 이곳으로 이주정착하였다.

창암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뒤에 왕심봉이란 푸른 바위가 있어 「파라매」라 부르다가 한자어로 고쳐 '창암(蒼岩)'이라 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조선 말에 송(宋), 이(李), 윤(尹)씨 성이 처음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하며 그뒤 함양박씨 박홍주가 곡성군 옥과에서 옮겨와 번창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벽파정마을

▶ 촌명의유래 : 황룡강물이 마을앞을 지나 배가 드나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은 원주김씨가 처음 들어와 개촌하였다고 전해진다.

검정마을

▶ 촌명의유래 :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 한 개를 놓고 다투는 형국이라 하여 구룡동이라 불렀으나 한말 때 '검정(檢亭)'으로 고쳤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조선 후기 전북 부안의 광산김씨 김기풍이 마을 앞산이 여덟 선비가 북을 치고 노는 좋은 형국이라 하여 처음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뒤 행구기씨가 신촌에서 옮겨와 오늘에 이른다.

신촌마을

▶ 촌명의유래 : 원래는 소고룡(召古龍)이라 하였으나 조선 초 1520년경 행주기씨 덕성군 기진공이 들어와 살면서 '새말', 즉 신촌(新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조선 초에 장수황씨가 처음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뒤 덕성군 기진공이 을묘사화를 피해 경기도 고양군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지금에 이른다.

용동마을

▶ 촌명의유래 : 「날근터」 또는 「금정동」이라 불리어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용동(龍洞)이라 고쳐 불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6세기 초부터 행주기씨가 터를 잡고 살았으며 그뒤 장흥고씨, 전주이씨가 들어와 오늘에 이른다.

천동마을

▶ 촌명의유래 : 원래는 「샘골」 또는 「새암골」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고쳐 천동(泉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에는 마을 형성에 관한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는데, 1480년경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46대손인 박한곤이 당시 함평현감으로 재직중 광산구 어룡동 박매(박산)마을이 명기(名基)임을 알고 장자 박배근을 그곳에 살게 하고 차남 양근과 손자 황을 이곳 샘골에 살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진주정씨 정만업이 함평 월야에서 옮겨와 정착한 후 성촌이 되었다.

두동마을

▶ 촌명의유래 : 처음에는 「두말」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斗' 자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두모동(斗毛洞)이란 명칭이 확인되고, 두동(斗洞)이라 부르게 된 것은 1914년 이후이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은 1560년경 여흥민씨 민칭도가 경기도 여주에서 옮겨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그 후 고봉 기대승이 강학을 위해 이 마을에 거주하였는데 그때 지은 백운정이란 정자와 수학 당시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비시동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뒷산의 형상이 마치 활끝처럼 생겼다하여 「비시말」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고쳐 비시동(飛翅洞)이 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지금부터 2백여년전 행주기씨 기동조가 개촌정착하여 지금에 이른다.

가정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가정(柯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450여년 전 지례전씨 전병사가 개촌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현풍곽씨가 산막동 원산막에서 옮겨와 살았고, 1780년에 나주임씨 임채호가 나주에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고 한다.

신임곡마을

▶ 촌명의유래 : 신임곡은 임곡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1970년대 구신임곡에서 분리된 마을이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신임곡이라고 칭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970년대 임곡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행정편의를 위해 두개의 마을로 분리하였다. 마을이 도로변에 형선되어 있고 공공기관가 상가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신임곡마을

▶ 촌명의유래 : 구신임곡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원임곡에서 분리되어 만들어 졌으며 1970년대 임곡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행정편의를 위해 두 개의 마을로 분리하였는데 이때 원래의 신임곡을 구신임곡이라 칭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구신임곡은 1900년경 광산김씨 김경화가 장성군 동화면에 옮겨와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커진 마을이다.

원임곡마을

▶ 촌명의유래 : 원임곡을 일명 '임실(任實)'이라고도 하며 원래의 임곡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580년경 함평현감 박승양의 후손인 박린이 박뫼(博山)에서 옮겨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성내마을

▶ 촌명의유래 : 일명 「성안」이라고도 하며 마을주위에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7세기초 함평군 나산면에서 진주정씨 정문두가 이곳의 산수가 좋아 이주정착하였다.

복영마을

▶ 촌명의유래 : 황룡강과 용진산 사이에 있어 여름에 피서하기 적합한 곳이라 하여 원래는 '피서동'이라 불렸으나 그 뒤 마을운세가 장구할 것이라 하여 복영(卜永)이라 개칭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은 조선 중종때 안동김씨 김조공이 무과에 급제 벼슬이 안주목사에 이르렀으나 그만두고 처가인 죽산박씨가 살고있는 이곳으로 개촌 정착하였다.

내기마을

▶ 촌명의유래 : 속칭 「안터」라고 하며 한자로 고친 형태인 「內基」라고 부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은 조선조 중종때 안주목사를 지낸 김조공의 후손들이 분가이주하여 이곳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 전설 : 옛날 나주관래 8대정각의 하나인 「회송정」이라는 정자터가 마을뒤에 있는데 나숭대(羅崇大)의 역모사건에 연계된 7형제가 집을 불사르고 피신하자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내려와 회정정을 헐고 서당골의 맥(脈)을 잘라버렸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하림마을

▶ 촌명의유래 : 임곡을 상하로 구분해 아래쪽에 있다하여 하림이라 부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200여년 전 장성에 살던 수원백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 개촌하였다.

광곡마을

▶ 촌명의유래 : 백우산의 넓은 계곡 안에 터를 잡고 있다 하여 '너브실(너부실)'로 불려 오다가 이후 한자식 표기가 일반화되면서 광곡(廣谷)이라 하였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광곡마을은 조선 초기에 평산신씨가 개촌하였다고 한다. 그 뒤 고봉 기대승이 신룡에서 수학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와 정착하였다.

오룡동마을

▶ 촌명의유래 : 일제강점기에는 임곡면의 끝마을이라 하여 '토말' 이라 했다가 이후 지금의 '오룡동' 으로 고쳤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790년경 나주나씨 나한방이 개촌하였다.

연계마을

▶ 촌명의유래 : 옛날에는 큰비가 오면 황룡강물이 범람해 마을전체가 섬이 된다하여 조선 말 장성군 김생규가 강도(江島)라 촌명을 지어 불렀다. 그 뒤 제방을 쌓은 후 수해안전지대가 되면서 연계라 개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909년 죽산박씨 박진복이 황룡강변에 펼쳐있는 초원을 개간, 입주 정착한 뒤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죽산박씨가 모두 떠나고 타 성씨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되었다.

종산마을

▶ 촌명의유래 : 속칭 「종메」또는 「독골」이라고 하며 그 두 뜻을 합쳐서 종산이라 부른다. 또 다른 마을 명칭 유래는 종손(宗孫)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종산이라 했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평산신씨 장절공의 21세손인 관수당이 한양에서 낙향하여 정착하였으나 그 7대손인 신초성 대에 화재를 만나 전북 고창군으로 떠났다. 그후 행주기씨 기효증이 광곡(廣谷)에서 옮겨오면서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와산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뒷산의 형국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하여 와산이라 하며 속칭 초지(草技)라고도 부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이 마을은 1821년 나주나씨 나수문이 나주에서, 밀양박씨 박재원이 경남 밀양에서 들어와 개촌하였고, 그 후 허씨, 함평이씨 순으로 입촌·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촌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명칭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789년 「호구총수」를 보면 나주군 오산면에 상촌이란 마을명이 그대로 확인되며 그 마을명이 현재까지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지금부터 320여년전 조선 중기 제주양씨 양봉희가 개촌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원사호마을

▶ 촌명의유래 : 마을 앞을 흐르는 넓은 황룡강이 마치 호수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속칭 '새우개', '새고개' 라고도 한다.
▶ 마을의 형성과 변천 : 1600년경 이천서씨 서이영이 터를 잡았으며 그 뒤 평택임씨, 전주이씨, 남양홍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